딘샘 1312 이후
1312기반, 해당 에피 스포 약간 있음
인생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 중 최악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거대한 침엽수림을 가로지르는 횡단 열차와 같다. 눈앞에 깊은 어둠밖에 없더라도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인 열차. 핸들이 고장 난 지 오래라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기계. 그를 이끄는 불가항력이 다할 때까지, 혹은 어딘가에 부딪혀 비참하게 박살이 날 때까지 달릴 수밖에 없는 무능한 고철. 딘 윈체스터의 인생에는 그런 폭주 기관차들이 아주 많았다. 이를테면, 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그랬다.
부적절한. 딘은 그 말을 떠올리고는 실소했다. 그들의 형제애가 그렇게 깜찍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흠, 그들에게는 더 지저분하고, 뭐랄까, 조금 더 끔찍한 수사가 어울렸다. 파괴적인, 반인륜적인, 비도덕적인, 역겨운, 추접스러운… 그는 그쯤에서 생각하기를 관두었다. 그런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쨌든 한참 전에 브레이크는 망가져 버린 터였다.
“으음…”
아래에 깔린 몸에게서 앓는 소리가 새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디작은 신음이 선명하게 귓가에 파고들었다. 머릿속을 지배하던 망상이 빠르게 사그라졌다. 딘은 고개를 숙여 다시 한 번 맨 피부 위에 입을 맞추었다. 방안에 깔린 어둠 위로 뜨거운 숨이 내려앉았다. 천천히 들썩이는 등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딘은 떠오른 감상을 여과 없이 뱉었다.
“살 빠졌네, 새미.”
안 먹으니까 그렇지, 이어지는 말에 얌전히 헐떡이기만 하던 등허리가 불온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반쯤 상체를 일으킨 그가 딘을 돌아보았다. 원래대로라면 진한 녹색을 띄고 있을 눈동자는 어둠을 머금어 검었다. 재촉하는 눈빛이 그를 찌른다. 재촉과 원망과 피곤이 한 데 뒤섞인 시선. 딘은 그에게 아무렇지 않은 듯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아. 검은 시선이 그를 떠나고 이내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샘은, 침대 위에서의 동생은 대화를 싫어한다. 한담이라고나 할까, 잠자리에서 연인들이 속삭이곤 하는 자연스럽고 다정한 수다를.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잠자리에서의 샘은 아주 참을성이 없었다. 그가 우위를 점할 때면 딘을 거칠게 몰아세우기에 바빴고, 반대로 딘에게 몸을 내줄 때면 그를 재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진정해, 새미. 유난히 몸을 섞을 때만 성질이 급한 동생을 두고 딘은 일부러 여유로운 척 속삭이곤 한다. 어쩌면 샘은 그런 여유를 즐길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쾌락이든 고통이든 끝없이 몰아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일지도. 뭐 그들은 고장 난 급행열차가 아닌가. 열차에게 정지란 곧 죽음이긴 했다.
정지란 곧 죽음. 딘은 그 말을 되씹으며 아래에 깔린 몸을 내려보았다. 굴곡이 진 허리와 척추선을 따라 그림자가 져 있었다. 딘은 그 어깨 끝부터 골반께까지 핥듯이 훑었다. 탄탄한 몸이었지만 전보다 확연히 얇아진 것이 눈이 띄었다. 딘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구겼다. 언제부터지. 샘 윈체스터는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는 서너 시간 밖에 자지 못하는 바쁜 헌팅 트립 중에도 틈 날 때마다 나가서 뛰고 오는 독한 족속이었다. 그런데 딘의 앞에 놓인 마른 육체는 그런 샘 윈체스터의 것치고는 조금 낮설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상황을 애써 묘사해보았다. 자신을 놓은 샘, 희망을 잃은 샘, 무기력한 샘. 샘이라는 글자 대신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으면 모를까, 어느 것 하나 조화롭지 않은 단어들이다. 절망에 빠진 샘. 문득 딘은 불편해졌다. 알고 있어도, 그 사실을 되새기는 건 달갑지 않았다.
그는 의식 위로 올라오려는 불쾌감을 떨쳐내려 다시 동생의 목덜미에 입을 묻었다. 조금 전에 씻어서인지 살에서는 미미한 비누향이 났다. 마트에 가면 항상 할인 행사 중인 싸구려 멜론향 비누다. 그런데도 그의 체취에 녹아들어간 인공향은 제법 감미로웠다. 자신의 몸에서도 그와 같은 향이 날까. 실없는 의문을 떠올리며, 그는 피부 위에 입을 맞추었다. 여린 목 뒷부분을 깊게 빨았다가 놓았다. 입술이 지나간 자리에는 진한 자국이 남았다. 애무는 느리게 열기를 더했다. 딘은 목을 따라 너른 등에 잇자국을 새겼다. 어둠 속에서도 제법 진하게 보이는 자국들이었다. 일련의 애무에도 아래 깔린 몸은 미동조차 없었지만.
불현듯 그의 무반응이 참을 수 없어졌다. 그는 일부러 샘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애무를 계속했다. 보일 만한 곳에 울혈을 남기고, 아프게 깨물고, 함부로 머리칼을 헤집었다. 허리 끝자락의 움푹 파인 골을 더듬던 손이 바지 아래로 침범하려하자 고요했던 몸이 마침내 긴장했다. 딘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흐, 한숨 같은 신음이 샜다. 짜증이 그 뒤를 이을 줄 알았는데, 베개에 파묻힌 머리에선 더이상 어떤 소리도 없었다.
이것 봐라, 딘은 입술을 물었다. 그 성질 급한 샘 윈체스터가 이렇게 둔한 반응이라니. 자신을 놓은 샘, 희망을 잃은 샘, 무기력한 샘. 다시금 불쾌감이 마음 속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딘은 그가 싫어하는 류의 애무를 계속하는 대신, 샘의 어깨를 쥐었다. 검은 눈동자가 의문을 갖고 그를 담았다.
“앞으로 하자.”
그가 말했다. 입가에는 딘 윈체스터 표 웃음을 띄운 채였다. 지나치게 매끄럽고 살가운 그의 태도 때문인지 낮선 제안 때문인지, 반쯤 닫혀 있던 눈이 커졌다.
“정상위는 좀… ”
“응? 싫다고?”
못 들은 척 묻자 저항을 내뱉던 입이 가만히 다물렸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그가 탐색하듯 딘을 찬찬히 살폈다. 내가 그거 싫어하는 거 알면서 무슨 말이야. 책망하는 것 같은 눈빛에도 딘은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아무렴 알다마다. 침대 위에서의 샘 윈체스터는 성급한데다 까탈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정상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바텀일 때는 더더욱. 평상시의 동생은 그랬다.
한참을 어지러이 딘의 얼굴 위에서 움직이던 눈빛이 거두어졌다. 후, 한숨을 내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뜻밖이었다. 딘 자신이 한 제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응은 신경을 긁었다. 최근 샘은 어떤 것 하나 샘답지가 않았다.
파도치는 딘의 마음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샘은 완전히 돌아누웠다. 움직임에 따라 들썩이는 몸의 근육이 시선을 온통 빼앗았다. 딘은 거의 반사적으로 옆구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단단한 살 위를 간지럽히듯이 쓸자 몸이 퍼득 뛰었다. 이제야 좀 마음에 드는 반응이네, 그는 만족스레 웃었다.
“여기 예민했지, 우리 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