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ónicas Vampíricas (BradTom)

루이레스타, 어느 날 밤의 결혼식

Arrny 2018. 2. 13. 01:44
“루이, 결혼할래?”

달이 보이지 않는 유난히 어두웠던 그날 밤, 거의 반년 만에 그를 만난 레스타가 한 말은 그것이었다.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싶은 건지 그를 올려다보는 보랏빛 눈동자엔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그런 그를 보며 루이스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바보같이 되물었다. 누구랑?

“당연히 나랑이지, 루이!”

그가 재미있다는 듯이 발작적으로 웃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기가 차 하, 하고 숨을 뱉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뱀파이어가 어떻게 결혼을 해.”
“왜 못해?”

그는 여전히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 전에 너랑 난 남자잖아, 레스타.”
“그게 재미있는 점인데 말이야, 루이. 오늘부터 이 신대륙 모든 곳에서 동성끼리도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군.”

분명 그 소식이 그의 마음에 장난의 불씨를 지른 것이겠지. 루이스는 이미 반쯤은 납득했으면서도 물었다.

“왜 나지?”
“내가 널 좋아하니까.”

금발의 뱀파이어는 그가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곤 대답했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더라, 루이스는 잊었을 리 없는 기억을 다시 재생해보았다. 아마 그냥 그대로 고개를 끄덕여버렸던 것 같다. 결국 그는 그 아름다운 얼굴에 약했으니. 그렇게 그날 밤 루이스는 레스타와 ‘결혼’하게 되었다.
 
 
레스타는 언제나처럼 제멋대로였다. 거기다 아주 뻔뻔한 종자였다. 어둠의 자식들인 주제에, 누구보다도 악마 같은 존재인 주제에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거라는 발상은 어디서 해낸 건지. 하긴, 따지고 보면 루이스 자신이 그렇게 말할 자격은 없었다. 아주 오래 전에 고해성사를 하러 왔냐고 묻는 선량한 신부의 피로 신성한 그 장소를 물들인 적도 있지 않았던가. 그래도 루이스는 신을 모시는 곳에서 악마 둘이 결혼을 하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금발의 뱀파이어는 그의 손을 잡고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말의 주저 없이 그곳에 남아 있는 목사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그는 가만히 목사에게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밤바람에 흔들리는 가는 금발이 어쩐지 즐거움을 머금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스타의 자초지종-저희가 오늘에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된 부부인데요, 목사님. 늦은 시간이지만 이렇게 기쁜 날 주례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을 들은 목사는 흔쾌히 그의 청에 응했다. 이제라도 결혼하시게 된 거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얼굴로 축사를 건네는 인간을 보며 그는 어색하게 슬쩍 웃어주고만 말았다. 애초에 그는 레스타처럼 타고난 연기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 장식으로 작은 초 몇 개만을 킨 그런 작고 초라한 성당에서 그들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더란다. 오로지 당사자들과 주례만이 참석한 작은 결혼식에서의 주례는 길지 않았다. 어둠 깔린 성당 안을 나긋하게 울리는 인간의 목소리가 멍하니 귓가에 흘러갔다. 성당 밖으론 이제 꽤나 쌀쌀해진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이 데려온 가을 냄새가 초의 향기와 섞여 묘한 향을 냈다. 그 모든 경이로운 것들을 느끼며 서 있던 루이스의 귀에, 문득 목사의 말이 꽂혔다.

“주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상대방을 영원히 지켜주고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루이스는 한순간 실소를 터뜨릴 뻔 했다. 어둠의 자식들이 주님 앞에서 맹세를 하다니. 그러나 제멋대로인 제 앞의 뱀파이어는 그런 것에 대해 또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싱긋 웃으며 즉답했기 때문이었다.

“네, 맹세하겠습니다.”

목사는 루이스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모순을 여전히 느끼면서도 자신은 순순히 대답했던 것 같다. 네, 맹세하겠습니다. 내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던 루이스였지만, 그 말에는 어떤 의심도 없었다. 아마 레스타도 그것을 느낀 것인지 루이스가 사랑하는 순수한 웃음을 다시 한 번 지었다.
지금 가진 마음 영원히 퇴색하지 않고 행복한 가정이 되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결혼을 축하하며 주례사를 마치겠습니다. 나긋한 인간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낡은 성당 안을 채웠다.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레스타는 루이스에게 한 발 다가왔다. 그는 웃음기가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해.”

그의 허리를 안으며, 루이스는 키스로 답했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었다. 그들 종족은 시간의 흐름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나 된 것인지는 몰랐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다만 루이스가 기억하는 것은 밤이 이렇게 쌀쌀해질 무렵, 켜켜이 쌓인 낙엽 향기가 이렇게 거리에 가득할 무렵이었다는 것이었다.

루이스는 익숙하지만 낮선 거리를 지나, 블록 모퉁이에 있는 화려한 집으로 향했다. 그와 레스타와 또 작은 소녀 뱀파이어가 자그마치 몇 십 년을 살았던 그 곳으로. 안으로 들어서자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같은 19세기 프랑스풍의 우아한 가구와 벽지가 시야를 채웠다.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나아갔다. 루이? 그제야 그를 부르는 친근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네, 루이?”

그가 반가움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루이스도 웃으며 그에게 다가섰다.

“이 집에는 이제 안 올줄 알았는데..”

레스타가 말을 이었다. 루이는 눈썹을 으쓱해보였다.

“그랬지. 근데 널 찾으려면 여기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

그는 말하며 손 안의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레스타가 의아한 듯이 루이스와 그 작은 상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곧 그는 그것을 받아 열었다.

“…웬 반지야?”
“너랑 이맘때쯤 결혼한 것 같아서.”

아. 우리 그런 것도 했었지, 그제야 깨달은 듯 중얼거리던 레스타는 금세 특유의 활기를 얼굴에 띄었다. 재미있다는 듯 큭큭거리는 그를 보며 루이스는 그날 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로맨틱하네, 루이스. 근데 반지 맞추기에는 너무 오래 전 일 아니야?”

그가 놀리듯이 말했다. 루이스도 따라 웃다가 그냥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우리가 시간에 그렇게 구애받는 존재들도 아닌데 뭐.”
 

한참을 신나게 웃다가, 루이스를 놀리다가, 그리고 단순하고도 우아한 무늬가 새겨진 은빛 반지를 한참동안이나 관찰하다가, 레스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루이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루이.”
“왜?”
“신혼여행 갈래?”

눈을 반짝거리는 금발의 뱀파이어는 그날 밤의 기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도. 그래서 루이스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사랑해.”

이번에는 그의 오랜 연인이자 남편이 키스로 답했다.


달이 모습을 감춘 날이었다. 두 뱀파이어가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모퉁이의 화려한 집은 곧 바람에 실려 온 가을 향기로 가득 채워졌다.